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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의 비결

2019.07.13 09:40

강성옥목사 조회 수:16

본문: 이사야 53장 1-6절

제목: 지혜로운 삶의 비결

날자: 2019년07월12일, 금요

 

생명이라는 것은 온통 “발산되는 에너지”입니다. 씨를 뿌려놓고 며칠을 기다리면 싹이 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라 갑니다. 상추를 심어놓고 보면, 그렇고, 들깨를 심어놓고 봐도 그렇고, 알타리 무우를 심어놓고 봐도 그렇고, 오이를 심어놓고 봐도 그렇고, 어떤 식물을 심어놔도 그렇습니다. 계속해서 속 안에 있는 에너지들이 이리저리 막 발산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나 짐승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에너지 같아서 계속해서 그 에너지를 발산시킵니다. 계속해서 꼼지락거리고, 옹알이를 하고, 일어나 스프링처럼 여기 저기에 뛰어다닙니다. 그런데, 씨를 뿌린 농부나 아이를 낳은 부모들은 그렇게 발산 되어지는 에너지를 자꾸 억제시키거나 심지어 다듬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열매, 성공적인 사람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에너지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다루어지지 않으면 쭉정이가 되거나 유익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을 우선 살펴봅시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위 구절을 말씀을 보면, 1) 외관상으로는 이것도 자르고 저것도 자르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2)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하나는 아예 잘라버리고, 다른 하나는 다듬어 주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αἴρει “cut off”(take away, remove)와 καθαίρει “prunes”(purge, clean)로 말입니다. 결국 열매가 없는 가지는 잘라낸다는 말이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잘 다듬어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해 준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나무는 생명이 있어서 계속해서 에너지는 발산시킵니다. 그것이 열매없이 계속해서 뻗어가든지, 열매를 맺든지.. 그런데, 농부가 그 생명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것일찌라도 열매없이 계속해서 막 자라가는 것은 아예 잘라버리고,  그 생명의 에너지를 가지고 또 다른 열매를 맺는 것은 다듬어 주어서 더 많이 좋은 결과를 맺도록 해 준다는 말씀입니다.

 

자름을 당하는 것은 분명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닙니다. 그것도 열심히 좋은 열매를 맺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처우를 받는다고 느껴지게 되면 낙심이 되고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자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듬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주 좋은 생명력을 가지고서도 왜 이런 ‘다루심’으로 다루어져야 하는가?하는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대답은 생명을 지닌 우리 ‘육체의 본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창세기 3장, 6장, 11장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에 보면, 원수 마귀란 놈이 뿌린 가라지 씨(마13:25-28, 39)가 무엇이었는지 살펴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불순종, 반항, 교만, 파괴력이었습니다. 그때 이후로부터 그의 중심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창세기 4장의 최초의 살인 역시 자기가 중심이 되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에서는 그같은 불순종, 반항, 파괴력, 자기가 중심되고자 하는 교만이 충만하여 온 세상에 죄악이 창궐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1장을 보면, 또 이미 홍수의 심판으로 엄청난 죄악의 댓가를 치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불순종, 반항, 파괴력, 그리고 자기가 중심이 되는 교만함이 ‘바벨탑’을 쌓게 만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에게는 이런 본성이 다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5-13절에 보면, 히브리서 기자는 이미 이것을 깨달아 알고 있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라면 더 아껴야 할텐데, 징계하신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본성 때문에, 좋은 열매 맺게 하시기 위해 그러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21-32절, 갈라디아서 5장 17-21절을 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왜 날마다 성령님의 조명이 필요하고, 왜 날마다 하나님의 ‘다루심’이 필요한지.. 잠시라도 하나님의 ‘다루심’이 없다면, 우리들은 분명히 우리의 생명을 담고 있지만, 마귀란 놈이 덧뿌려 놓은 가라지 씨앗을 지닌 ‘육체의 욕심’에 이끌려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적절한 시간에 적당한 시기에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징계가 필요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6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말씀한 것을 보십시오. 그것은 어느 개인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온 땅의 어느 누구에게든지이고, 또 온 우주 공간 어떤 존재에게든지 다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을 거스리는 존재에게는 절대 허락지 않으시는 일입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서 나오는 겸손이라는 말은 형용사 ταπεινός로 “lowly” “depressed” “humble” “inner lowliness” (God-reliant rather than self-reliant)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겸손’은 스스로 할 수도 있지만, 때때로 억지로 되어질 수도 있다(depressed, cast down)는 의미입니다.

 

겸손이 억지로 되어질 수 있다는 말에 대해서 좀 더 살펴 보기로 하십시다.

사실 “겸손”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도 무수히 말씀하셨던 덕목 중에 하나입니다. 마태복음 18장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눅18:14), 마태복음 23장 12절,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시면서 누가복음 14장7-11절을 통해 어떤 잔치에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게 잘 안됩니다. 이게 잘 안되니까, 발산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자기도 모른 채로, 혹은 막 되는대로, 나아간다거나 진행하거나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잘 안되니까, 잠언29장23절, 에스겔17장 24절, 21장26절, 누가복음 1장25절, 야고보서4장6절, 베드로전서5장5, 6절에 보면, 스스로 잘 안되는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해 주신다는 말씀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이 가운데 에스겔 21장 26절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관을 제거하며 왕관을 벗길지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렇게 되게 하시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들을 사용하시기도 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119편 71절을 통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말입니다. 고난을 통해 겸손을 배우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저도 모르게 “죽음과 관련한 생각들”을 많이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박 장로님을 보내드리고 나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작년에 한국을 다녀오면서 책을 좀 샀는데, 그 중에 “잘 살고 잘 웃고 좋은 죽음과 만나다”(“Yoku Iki Yoku Warai Yoki Shi To Deau”(“Good Living, Good Humor, Good Death”)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1932년생이신 독일출신 가톨릭 예수회 출신 신부님이시자 일본 소피아 대학(Sophia University)에서 30년여 동안 ‘죽음 철학’(Philosophy of Death)을 가르치시고 2003년에 은퇴하여 최근까지 집필활동을 하신 알폰스 데켄(Alfons Deeken, 1932~) 신부님께서 쓰신 책인데, 우리 나라에서 죽음 준비 교육에 남다른 관심과 연구 성과를 가지고 계신 길태영 교수님이라는 분이 번역한 책입니다. 솔직히 아직 열어보지도 못한 책입니다. 그런데, 150-151페이지의 죽음의 의미, 삶의 의미라는 작은 제목 아래에 알폰스 신부님은 어거스틴, 키케로, 몽테뉴의 글을 인용한 내용이 있어서 나누어 봅니다.

 

먼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교부이자 철학자였던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354-430)은 죽음에 관하여 누구보다도 많은 시간을 할애한 사람이었다고 서술했습니다. 또 알폰스 신부님은 실존철학자 키케로(M.T. Cicero, B.C. 106- 43)의 말을 인용하면서 “철학이란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 외에 그 무엇도 아니다”라고 했고, 그 다음에는 프랑스 르네상스 때에 대표적인 철학자였던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1592) 경의 말을 인용하여,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죽는가를 배운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도 배운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이미 지혜로운 왕 솔로몬이 이미 했던 생각들이었고 말씀이었습니다. 전도서 7장 2, 4절에 보면,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 집에 있느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같은 자세, 마음, 태도를 유지하여 산다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자기 교회 집사님이 한 분이 교통사고로 다쳐서 병원 응급실에 있다는 갑작스러운 전갈을 받았습니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어 온통 붕대를 휘감은 채 한쪽 눈만 겨우 드러내놓고 있습니다. 너무 졸지에 당한 일이기도 하고 또 얼굴에 상처가 너무 심한 것 같아 뭐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손을 잡고 "집사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였더니, 집사님 조용히 목사님 얼굴을 바라보는데 눈에서 눈물이 흘러 얼굴을 감은 붕대를 적십니다. 그리고 목사님 손을 더 꼭 잡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목사님 염려 마세요. 괜찮습니다." 그리고는 딱 한마디를 더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무 오래 참으셨지요" 목사님은 이 짧은 한 마디 말속에서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냥 손을 잡고 고개만 끄덕거렸다고 합니다. 죽음의 위기 속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같은 마음을 늘 유지할 때에 삶은 더욱 의미있는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에너지’가 아무런 제재없이 거침없이 발산되어지기만 하면 절대 겸손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겸손케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같은 방식이 통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독일 베를린의 흄볼트 대학교의 본 건물에 이런 글귀가 씌여져 있다고 합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을 해 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는 글귀입니다. 이 말은 공산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우고 있는 칼 막스(Karl Marx, 1818-1883)가 1845년 그의 노트에 휘갈겨 쓴 글귀였다고 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오늘날까지 전 세계의 절반에 가까운 나라들이 공산주의의 물들여져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 막스와 레닌(Lenin, 1870-1924)과 함께 구 소련의 공산주의를 지켜왔었던 스탈린(Joseph Stalin, 1878-1953)도 아마 칼 막스와 같이 세상을 바꾸길 원했을 것입니다. 그는 그의 공산정권 수립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숙청하거나 학살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폴란드의 카틴 학살인데 자그마치 많게는 10만명에서 적게는 22,000명이 그의 손에 죽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 김일성을 앞세워 한국전쟁을 일으켰던 장본인도 스탈린이었습니다. 세상을 바꾸자고 애꿎은 폴란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었던 그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1953.3.5)에 그의 임종을 지켜보던 후르시초프(N.S. Khrurshchev, 1894-1971)에게 “나는 이제 희망이 없는 존재가 되었구나”라고 하면서 슬픔과 고통, 괴로움이 가득찬 모습으로 숨을 거뒀다고 증언했다고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가며 세상을 바꾸고 싶어했지만, 정작 자기 한 사람도 바꾸지 못한 것입니다.

 

그의 이력을 보면, 러시아 정교회의 신자였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서 기독교 학교를 다니기도 했었던 스탈린은 그러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폭력성과 반항심을 어찌하지 못하고 18-20살 무렵 공산주의에 심취하여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고 공산주의자로 변신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반대하거나 방해가 되는 사람들은 모조리 죽이는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최악의 살인마가 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얼마나 참담한 이야기입니까? 그리고 죽어가면서는 ‘아무 희망도 없다’고 하면서 그를 데리러 온 죽음의 사자들 앞에서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했던 것입니다. 이미 너무 멀리 뻗어가거나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린 사람들은 ‘겸손’과는 전혀 상관없이 삽니다. 마태복음 13장 25-28, 39절에서 가라지의 씨앗을 받아 가라지를 키운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12:5-8)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하고, 이것을 ‘아멘’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삶을 지혜로 살아가거나 의미있게 살기를 원한다면, 마음의 추를 하나쯤은 달고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마음이 막 흔들리거나,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버리자고 포기하고 싶을 때, 어떤 바람이나 폭풍, 혹은 파도가 덮쳐 온다고 해도 끄떡지않고 지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이 마음의 추를 하나 달아놓고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만나는 은혜가 바로 이사야 53장 5절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있을 때에 균형잡힌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로 우리를 다스릴 수가 있고, 육체의 본성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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