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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2019.06.15 09:20

강성옥목사 조회 수:18

본문: 이사야 40장31절

제목: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날자: 2019년 6월 14일, 금요

 

이사야서40장1절을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라고 말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은 장차 도래할 바벨론 포로 기간에 대한 유대인들의 회복이 꼭 반드시 도래해 올 것이다는 메시지로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말씀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또 한 사람 더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찰스 제넨스(Charles Jennens, 1700–1773)라는 사람으로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든지, 당장에 그것을 종이에 휘갈겨 써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은혜를 받은 내용을 죠지 프레드릭 헨델(Georg Friederich Händel, 1685-1759)에게 보냈습니다. 헨델은 우리가 잘 아는 바로 그분입니다. 그가 이것을 받을 당시에 헨델은 그동안 써 왔었던 이태리 가곡(Italia Oratorio)의 사향길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던 차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제넨스의 은혜의 메모지는 가뭄 속의 단비와 같았습니다. 게다가 그것은 성경 말씀으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제넨스가 보내온 그 메모지의 표지에는 이사야40장1절의 말씀이 적혀 있었고, 그 메모지의 표지를 열어보니, 제넨스가 은혜 받았던 그 내용들이 가득차 차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버림을 받았다. 그는 자기를 불쌍히 여겨줄 사람을 찾았건만 그럴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를 위로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 외에는--”

 

그렇잖아도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하며 나름대로 낙심이 되어 있던 헨델에게 제넨스의 은혜의 메모가 헨델의 무거운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동안 변변치 않은 수입에다가 건강도 좋지 않고, 생활고에 시달려 오던 헨델은 추위와 배고픔도 잊어버리고, 그 자리에 앉아 24일 동안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위대한 대작 “메시야”를 탄생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푸른 창공 저 높이 올라 날개 짓을 하는 한 마리의 독수리의 모습도 떠올려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암담했었던 바벨론의 포로기간을 살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유대인들)이 지켜야 했었던 그 믿음과 신뢰, 그리고 그것을 지킨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좀 더 살펴보도록 하십시다.

 

첫째로,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들 (wait upon the LORD, hope in the LORD)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때 당시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었습니다. 물론 두번째 선지자 이사야(혹은 제2이사야, 545-540 BC, 첫번째 포로귀환-536년 전)의 때는 조금 다른 상황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첫번째 이사야가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 이사야서를 쓸 때는 그 유명한 므낫세 왕 때로 주전 763~652년 경이었습니다. 므낫세는 바알과 아세라상을 전국 곳곳에 세웠고, 일월성신을 숭배했었고, 심지어 인신제물을 바쳤고, 무당들이나 점쟁이들까지도 허용했었습니다. 종교 적인 혼합주의였고, 배교주의적인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선지자 이사야를 죽였던 왕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종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혹은 바벨론의 포로기간으로 있었을 때에도 여전히 바벨론 신들이 있었습니다. (An, Enlil, Enki 를 3신, 그리고 7신들; Marduk(Jupiter), Ninurta(Saturn, warrior), Nergal(Mars, underworld), Inanna(Venus, love/sexuality /prostitution), Nabu(Mercury, wisdom/agriculture), Nanna-Suen(Moon, moon-god, 신들에게 힘을 주는 존재), Utu(Sun, justice) 오늘날 일주일의 이름들이 여기서 유래되었다) 그런 문화와 사회 속에서 유대인 포로들이 살았었다는 것입니다. 그밖에도 그들에게는 다른 많은 신들이 있었습니다. 과연 끌려갔던 유대인들의 신앙이 하나님 여호와께 집중될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날도 우리 주변에 수많은 종교들과 문화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포로기간 동안 그런 환경 속에서 살던 유대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재패할 정도로 강인한 바벨론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와 종교 등, 당장 눈에 보이는 그 바벨론의 것들에 현혹되어 그들의 믿음을 다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자녀들을 공격하는 악령들의 공격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욱 적극적이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에 관하여 비아냥 거리고, 험담을 쏟아내며 그들의 믿음을 실족시키려고 했었을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을 빌리자면,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나이다”(시42:3)라고 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도 무수히 많은 말들을 했었을 것입니다. 또 곳곳에서 그들은 그들의 민간신앙을 말하며 죽은 자들을 접신했었을 것이고, 또 그들의 과거나 미래에 대해 점을 치기도 했었을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매일 매일, 70년이 다 되도록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릴 사람들이 있었겠느냐? 는 것입니다.

 

과연 여호와 하나님만,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만 집중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여호와를 앙망한다”라는 말씀을 보니까, “קָוָה”(qavah) 즉, to wait for, endure, remain, or look eagerly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KJV은 to wait for로 해석을 했고, NIV는 hope for로 해석을 했습니다. 즉 참으면서, 간절히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간절히 소망하면서 참고 기다리는 것을 의미하는 말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종교, 다른 문화, 다른 가르침들은 쉬워보이고, 눈에 보이도록 뭔가도 만들어 내고,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서 선택의 폭도 넓은데,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오히려 숨이 턱턱 막히도록 딱딱하고, 고리타분하고, 답답하느냐?면서 나타나시지 않는 하나님을 기다리고 인내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펴보십시오. 신명기 31장 16-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방인들의 신들과 문화와 그들의 풍조(lifestyle)을 따라 살게 될 때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얼굴을 숨기시겠다고 하셨는데, 이사야 8장17절, 59장2절, 64장7절, 그리고 에스겔 39장 23절에서도 그러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10-14절을 보면, 한 사람 바리새인에게는 그의 얼굴을 숨기셨고, 또 다른 사람 마음을 다 해 기도한 세리에게는 그의 얼굴을 보이셨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말은 하나님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둘째로,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새롭게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우리를 새롭게 해 주실 수 있을까요? 1) 시편 103편 5절에 보니까,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하셨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며 소망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간절히 기다리던 분이 계셨습니다. 2)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메시야였습니다(눅2:25). 그리고 그들 중에 상당한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기다려 오던 메시야를 만나 죽었다 깨어나도 경험치 못할 일들을 경험하였었습니다. 완전히 새롭게 된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도 주시잖습니까?! 그같은 축복은 3) 사도행전 1장 4절에서도 기다리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그 말씀 그대로 실천했었던 제자들에게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기다렸던 분은 성령님이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또 다른 권능을 행사하시던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시대를 지나가고, 또 다른 시대에 태어나 여전히 하나님을 앙망하고 기다리면서 그와 같은 ‘완전히 새롭게 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 “새 힘을 얻으리라”는 말은 이런 말인 것입니다.

 

셋째로, 독수리가 날개치며 날아 오름같을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약하여지거나 지치지 않게 될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저는 늘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왜 하나님께서 독수리에 관한 말씀을 자주 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부정하여서 먹지 말아야 한다고 레위기서 11장 13절, 신명기 14장 12절 등에서 말씀하셨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에서는 37번 정도에 걸쳐 독수리에 관한 말씀들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러셨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몇가지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1) 독수리는 가장 높게 날아 오른다는 것입니다. 독수리의 종류는 약 60여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높게 날아오르는 독수리는 Ruppell's griffon vulture로 최고높이 11,300m(37,000ft)까지 날아오른다 고 합니다. 2위는 Common crane으로 10,000m(33,000ft)를 날아오르고, 3위는 Bar-headed goose 로 약 8,481m(Mt. Everst를 넘어감 27,825ft)를 날아오른답니다. 캐나다에 날아다니는 기러기(Mallard)는 6,400m(21,000ft)로 8위를 기록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점을 인상깊게 보시고 말씀하신 것 같아 보입니다. 그리고 독수리처럼 하나님 가까이 날아오르라는 것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조금 지나친 해석이 될 수도 있는데, 2) 성경 속에서 독수리는 때때로 부정적인 존재들로 표현되고 있기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바댜 1장4절에서는 에돔의 교만함을 지적하시면서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이사야14장12절에서 교만한 바벨론 왕의 교만함을 지적하시는 말씀과 비슷하여 보입니다. 하나님의 뭇별 위에 올라 자기의 보좌를 높이려 하는 계명성아(혹은 루시퍼, KJV)라고 하신 말씀같은 것입니다. 가장 높이 나는 새, 독수리가 사람들의 교만함을 표현할 때에 언급되어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8장 13절, 잠언30장 17절, 예레미야49장 22절, 욥기9장26절, 마태복음24장 28절, 누가복음 17장 37절, 호세아8장1절 등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특히 호세아8장 1절에서 “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 원수가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그들이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라고 하시면서 원수들이 독수리처럼 빠르게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나라를 덮칠 것이라고 독수리의 기민함을 비유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고 하시면서 독수리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묘사해 주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물론 독수리의 모든 종류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영국의 신학자 Charles Ellicott(1819-1905)은 이 부분을 독수리는 로마를, 주검은 부패했던 유대이즘 신앙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또 주검은 십자가 위에서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해석했습니다. 또 다른 신학자 Heinrich August Wilhelm Meyer (1800–1873)는 “주검”을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정리해서 언급해 본다면, 성경 속에서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는 때때로 파멸, 죽음, 고통 등과 관련하여 ‘독수리’를 상징적으로 사용하시기도 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챨스 엘리콧이나 하인리히 메이어의 해석으로만 보더라도, 독수리는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인디언 추장들이 머리에 쓰는 Headdress(새의 깃털로 장식된 관 같은 것)는 대부분 Golden Eagle(검독수리)의 깃털이 사용되어진다고 합니다. 왜 그러면 Golden Eagle이냐? 검독수리는 사냥감을 가리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영양, 순록, 심지어 곰도 사냥한다고 합니다. 용맹함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족 중에 용맹한 아이들에게 그들이 용맹한 행동으로 인정을 받을 때 이 검독수리의 깃털을 하나 씩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많아지게 되면 그것을 엮어서 머리는 쓰는 것이랍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재왕이자, 신의 메신저로 검독수리를 숭배한다고 합니다. 종교성까지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Totem Pole을 보면, 토템 기둥의 맨 위에 독수리가 조각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젠 정리해 보십시다. 하늘을 날면서 하늘의 재왕처럼 군림하고, 주검(죽은 신앙, 교만, 불평, 불만, 악의 등)을 쫓는 존재가 무엇입니까? 마귀일 것입니다(베베소서6:10-12, 참조).

 

자,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십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오랜 세월 동안 바벨론에서 고통의 삶을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가지 위험이나 배교의 환경과 고비들을 맞이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곧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다리며,’ ‘그 믿음에 남아있는,’ 믿음의 자녀들에게 ‘여호와만을 앙망하는 자들을 내가 새롭게 해 주리라. 그 사람들은 독수리가 날개짓을 하면서 날아 오름같이 힘차게 날개짓을 하며 날아 오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오직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기다리는 믿음과 신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좀전에도 살펴보았습니다만, 시편 103편 5절에서,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하셨단 말입니다. 끈질긴 믿음, 인내하는 믿음, 기다리며 소망하고 희망하는 믿음을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또 한편으로는 마태복음 10장 1절이었고, 사도행전1장8절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영들 (unclean spirits)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하셨고, “어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면서 우리의 영혼을 죽음과 파괴의 독수리같이 공격하는 원수 마귀를 우리들도 독수리같이 날아 오르고, 독수리 같은 힘과 권세로 대적할 수 있도록 해 주시겠다는 말씀이기도 하다는 것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물론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혹은 본문을 본문으로 한 설교 말씀을 들어 왔었던 사람이라면, 오늘 말씀은 다소 충격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불가능한 해석은 아닐 것입니다. 악한 영들이 활동하는 모습은 마치 독수리와도 같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날아오는 줄 모릅니다. 한번 공격이 시작되면 그 파괴력이 대단합니다. 또 하늘을 제압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의 메신저 (하나님의 메신저가 아니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더러운 악령들을 대적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시고 충분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기대하는 바벨론의 유대인들에게는 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이 그와같은 느낌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랬을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와같이 우리가 하나님께만 집중하며 살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악한 마귀의 억압과 영적인 공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우리를 새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세찬 바람이 불어올찌라도 오히려 그런 바람을 이용해 푸른 창공으로 높이 올라가는 독수리처럼, 우리들도 성령의 바람을 타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역을 위해 높이 날아오를 수 있도록 해 주실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더 언급합니다만, 이와같은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도록 하는 가장 근본적인 시작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만을 앙망하는 마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기를 축복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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